엄마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내 자녀의 '출산에서 양육' 이야기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처음 세상에 나온 자녀와 마주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 느낌을 상상해보자. 기쁨, 설렘, 두려움, 걱정, 실로 그 느낌은  다양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첫 아이였기 때문에 그만큼 더 설레고 어떤 아이일까 궁금증이 컸어요. 출산 직후 아이가 내 품에 안겨서 우는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 상희 학생이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구경하고 있다.
▲ 상희 학생이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구경하고 있다.

허공렬(42세, 여) 씨는 담담한 자세로 첫째 딸과 마주했을 때를 떠올렸다. 곧바로 허 씨는 ‘한 달이 지나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고 말을 이었다.

허 씨는 딸과 눈을 마주치려고 했지만, 딸의 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늘 허공을 향했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아 서운함이 들기도 했단다. 그래도 허 씨는 언젠가 아빠와 엄마의 눈을 바라봐줄 것이라는 기대로 몇날며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허 씨의 딸은 여전히 눈을 맞추지 않았다. 생후 6개월이 됐지만 몸을 뒤집지도 않았다. 허 씨는 그저 성장이 느린 것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불길함을 떨쳤다.

허 씨는 딸이 태어난지 27개월이 지나도 아빠·엄마를 부르지 않자 소아정신과를 찾았다. ‘확답할 수 없지만 자폐성장애가 의심되니 일단 치료교육을 받자’는 의사의 말에, 허 씨는 2년간 초조한 마음으로 딸의 언어·놀이치료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딸이 네 살이 되던 어느날, 허 씨는 ‘자폐성장애 1급’이라는 판정과 마주했다.

김숙현(45세, 여) 씨는 가족분만으로 첫 아들을 낳았다. 의사로부터 ‘뱃속 아이의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건장한 아이가 태어나겠구나’ 내심 기대했던 그에게 첫 분만의 기억은 ‘불안함’이었다.

“4kg이었어요. 기대에 가득차 아이를 기다렸지만 ‘조금 이따 보여주겠다’며 아이를 바로 보여주지 않았어요. 며칠이 지나도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의사와 남편이 나에게 와서 ‘상태가 조금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 했어요.”

김 씨는 아들을 자신의 품이 아닌 인큐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해야 했다. 그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청색증에 심혈관이 막혀 건강이 좋지 않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김 씨는 ‘그래도 수술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아들이 태어난지 24개월이 지났지만, 김 씨는 ‘아빠, 엄마’ 소리를 듣지 못했다. 허 씨가 그랬듯 김 씨 역시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성장이 느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시간이 지나도 걸음마를 하지 못했고, 병원을 찾은 김 씨는 네 살인 아들이 ‘지적장애 2급’이라는 판정을 들었다.

내 아이의 장애 판정, 그렇게 그들의 삶은 바뀌었다

▲ 엄마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철수(가명, 사진 왼쪽)
▲ 엄마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철수(가명, 사진 왼쪽)

김 씨와 허 씨 모두 자신의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왜 나에게?’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이따금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함께하고자 했던 여행도, 꽃구경도,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막막함이 그들을 뒤덮었다.

이때부터 김 씨와 허 씨의 삶은 24시간 자녀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말그대로 ‘고군분투기’가 시작됐다. 특히 김 씨는 프리랜서로 일했지만, 아들과 함께 하기 위해 이마저도 그만뒀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양육하는 데 정보가 없었던 김 씨와 허 씨는 먼저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에게 중요하다는 ‘조기치료교육’부터 시작했다.

허 씨는 주변 부모로부터 좋다는 프로그램 정보는 모두 모았고, 근처뿐만 아니라 먼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필요한 복지관 프로그램은 전부 신청했다.

허 씨가 알아본바로는 병원에서 이뤄지는 언어치료는 1회 3~4만 원, 놀이치료는 1회 5만 원이 든다. 이밖에도 심리치료와 그룹치료 등이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한 달 치료교육에 드는 비용은 100만 원이 넘는다.

복지관의 경우 치료교육 한 회 비용은 평균 9,000원. 병원보다 저렴한만큼 신청자도 많아 5년을 기다려야 이용할 수 상황도 벌어진다. 따라서 ‘수요의 틈새’를 찾기 위해 먼곳까지 가는 불편함도 감수한다.

평소 다른 부모들과 교류경험이 풍부했던 김 씨 역시 언어, 인지, 수영, 생활체육, 미술, 심리 등 8개가량의 복지관 프로그램을 찾아 촘촘한 일정을 짰다. 김 씨는 부족한 비용은 친정에서 빌려 마련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조기치료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허 씨의 경우 ‘장애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물론 자폐성장애가 사람마다 전부 다르다고는 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쉬움과 답답함을 감출 수 없다.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엄마들 사이의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사실’이 되요. 복지관마다 특색있는 치료교육 내용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좋아요. 일명 ‘카더라정보’로 통하는 것들에 의존하게 되는데 어떤 것은 효과를 보는반면 어떤 것은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죠.”

허 씨 역시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시행착오라고 하기에는 뒤따른 고통이 너무 컸다고 이야기 한다. 다른 부모들 사이에서 ‘말을 트이게 하는 데 용하다는 곳’을 다닌지 한 달, 딸은 의사표현을 꺼리고 시키는 것만 하는 아이가 됐다.

“알고보니 말을 트이게 하는 과정이 강압적이었어요. 얇고 긴 자를 아이 입안에 깊숙이 넣고 ‘아’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었죠. 이 방법을 계속 쓰니까 나중에는 아이 앞에 손가락만 대도 ‘아’ 소리를 내요. 엄청난 스트레스로 정서가 무너져서 갑자기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는 횟수가 늘었어요. 딸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만 몇 년이 걸렸죠.”

허 씨는 “어떤 부모는 아이가 얌전해진다는 말을 듣고 신경안정제를 먹이기도 한다. 잘못된 방법인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하게 된다. 자폐성장애를 하나로 정리할 순 없지만 의사, 전문가, 부모가 모여 사례를 토대로 통계를 내고 정보를 정리하면 어떨까 싶다.”고 토로했다.

함께가는 데 필요한 것, ‘아주 조금씩, 천천히’

▲ 상희 학생(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졸업식날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상희 학생(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졸업식날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녀는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모의 품을 서서히 벗어날 준비를 한다.
집안에서만 생활하던 자녀를 처음 밖으로 내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겠지만,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의 걱정과 우려는 더 크다.

김 씨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됐을 때 특수학교와 통합학교를 놓고 고민했다. 사교성은 좋지만, 장애가 없는 학생을 상대로 하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특수학교도 고려했다. 그러나 김 씨의 고민이 무색하게 특수학교로부터 ‘장애정도가 가볍다’는 이유로 거부 당했다.

“매일매일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입학하고 1년동안 아이를 등교시킨 뒤 한두시간씩 학교 근처를 돌아다녔어요.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수업은 잘 받을 수 있을까 너무 걱정스러웠죠. 제일 걱정한 부분은 다른 학생과의 관계에요. 지적장애가 있다고 누군가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니거든요. 놀림과 장난에 상처 받을까봐 지금도 두려워요.”

“내 아이는 다섯 살인데 세 살배기 아이들만 있는 치료교육 공간에 머물게 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인가 싶었어요. 또래와 어울릴 수 있도록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통합어린이집 선생님 한 분께서 어린이집을 보내라고 권유하셨어요. 당시 딸이 3분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고민했는데, ‘6개월정도 지켜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린이집을 보내게 됐죠.”

허 씨는 딸을 초등학교에 보내기 전 통합어린이집에 보냈다. 허 씨의 우려대로 허 씨의 딸은 통합어린이집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가하면, 다른사람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냥 내가 가르쳐야겠다’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허 씨에게 힘을 준 것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으니 더 지켜보자’는 통합어린이집측의 말이었다.

여덟 살이 돼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3분에서 5분으로 늘어날 때즈음, 비록 허 씨만이 느낄 수 있는 변화였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결정했다. 이곳저곳 원서를 넣고 여러 번 탈락하기를 반복한 끝에 통합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허 씨는 “입학 한달 전 학교를 다니며 적응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소용 없었다. 학교에 가기 싫어 아침마다 소리를 지르거나 오열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그제야 서서히 적응하더라.”고 말했다.
여전히 대소변을 옷에 보기도 했지만, 또래가 화장실에 가는 모습을 보고 교사에게 신호를 보내거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 화장실에 가기 시작했다. 또 ‘밥상 앞에서 투정을 부리던’ 딸이 또래와 함께 줄을 서서 급식을 먹는 법을 익혔다.

“집에서 일대일로 화장실 가는 법, 밥 먹는 법을 가르쳤지만 생각만큼 아이가 잘 따라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고 함께 지내니 서서히 일상생활과 규칙을 지키더라고요. 이는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학교에서 학업을 쌓는 것은 바라지 않아요. 그건 말 그대로 욕심이죠. 난 우리아이가 지금처럼 학교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큰 의미죠.”

허 씨는 학교생활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선생님이 아이에게 주는 영향’이라고 강조했다. 허 씨는 딸이 4학년일 때 언제 시작될지 모를 생리문제로 담임교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담임교사는 1년동안 생리대를 차는 방법 등을 가르쳤고, 생리를 시작한 뒤 교사와 함께 화장실에 가서 혼자 생리대를 찬단다. 뒤처리가 서툴러 흔적을 남기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게 천천히 변화가 일었다.

한편, 김 씨는 최근 한 교사를 대상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지난 8월 한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로부터 ‘수업에 방해가 되니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연락을 받았다.

김 씨는 “연락 받았을 때 마치 습관처럼 ‘우리 아이가 잘못했겠거니’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해당 수업에서 놀이를 마치고 진도를 나가려고 하자, 아들이 자리에 일어나서 돌아다녔다고 한다.”며 “아들을 이해한다면 평소와 다름 없는 행동이었는데 이를 문제 삼아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당사자에게 꼭 사과받고 싶다.”고 설명했다.

소통은 ‘존중하는 것’부터

▲ 아빠, 누나와 함께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철수(가명, 가운데)
▲ 아빠, 누나와 함께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철수(가명, 가운데)

발달장애가 있는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통은 생각보다 어렵다. 단순히 짧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원활한 대화는 이뤄지기 어렵고, 대화가 없으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김 씨의 아들 양철수(11세, 가명) 학생은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다. 5~6세 지능으로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말하지는 못하며, 단어와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높아,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기도 한다.

철수 학생은 애정을 표할 때 좋아하는 사람을 손바닥으로 쓰다듬는데, 요즘 김 씨는 ‘하면 안돼’라고 반복해서 주의를 준다. 청소년기를 앞둔 시기인만큼, 상대방이 신체접촉을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 걱정이 크다.

“아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도 많지만, 주변 사람들의 잘못된 시선도 많아요. ‘아픈 척 하면서 만지고 다니는 것 아니냐’고 오해 받을 땐 너무 답답하지만 그저 사과하고 아이를 가르치는 수밖에 없죠.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말을 못해’, ‘바보’, ‘그래도 너희는 몸이 멀쩡하지 않느냐’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한국사회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겠더라고요. 지능이 낮을 뿐 또래가 갖고 있는 감수성은 같아요.”

허 씨의 딸 한상희(16세) 학생은 현재 중학교 2학년이다. 요즘 상희 학생은 손가락으로 실감기와, 노래 ‘루돌프 사슴코’의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구간을 반복해서 듣는 데 푹 빠졌다.

상희 학생은 정해진 생활, 즉 익숙한 생활에서 벗어나면 크게 불안해 한다. 허 씨는 그런 딸을 위해 될 수 있으면 정해진대로 생활하려고 한다. 혹시나 일이 생겨 하던 것을 하지 못하거나, 안하던 것을 해야 할 때는 딸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2~3일 전부터 계속 이야기한다.

상희 학생은 평소 자신의 의사를 적극 표현하지는 않지만, 크게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일 때는 소리를 지르거나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허 씨는 그런 딸의 곁에서 지켜보며 ‘상희 학생만의 소통방법’을 익혔다.

“나도 가끔 아이의 행동에 놀랄 때가 있어요. 한번은 다른 사람의 청바지 구멍에 손가락을 넣는가하면, 과자를 빼앗기도 했어요. 제 나름대로 주의를 주기도 하지만 아이가 딱히 듣지 않는 것 같아요. 아이와 마주친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에요. 짜증을 내거나 욕하면서 삿대질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키우면 안된다, 여기를 가봐라, 이런 것을 해봐라’라는 사람이 있죠. 저도 처음에는 아이를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그냥 그럴 수 있겠다’고 넘어가는 것들도 생겼어요. 내 말을 듣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넋두리도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요. 남들과 조금 다른, 생각에 개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자녀의 미래, 부모 혼자서는 꿈꿀 수 없는 세상

“아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죠. 당장 중학교를 특수학교를 보내야할지 통합학교를 보내야할지부터요. ‘초등학교 잘다녔으면 그걸로 만족해야지’라는 반응도 있지만, 내 아이가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아이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잖아요. 학교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서 학교가 의미 없는 곳은 아니니까요.”

“한국사회 인식이 바뀌길 바라요. 우리가 죽고난 뒤 아이가 자립해서 살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둘째 딸이 언니를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라요. 떠맡기고 떠나고 싶지 않아요. 물려줄 재산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과연 우리아이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나……. 확신할 수 없어요. 정책과 제도가 자리잡지 않은 상황에서 그렇게 살기란 불가능하다고 봐요.”

시간이 흐를수록 크는 자녀에게서 부모는 자신이 점점 작아짐을 느낀다. 김 씨와 허 씨 역시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것들이 손에 꼽을 수 없을정도로 많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역사회에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 받는 것은 부모의 역할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부모들은 오늘도 ‘우리아이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지원받은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