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한국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가 지난 15일~20일까지 열렸다. 해당 행사는 한국교회의 사회 섬김과 총량을 가늠하고, 사회문제 해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05년과 2010년에 이어 3회째를 맞았다. 서울시청 광장 한켠은 기독교단체와 사회복지단체의 행사 공간으로 빼곡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어려운 이웃의 삶을 경험해보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린 한 복지관의 행사 공간에 들어섰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삶을 체험하는 것으로, 진행자는 기자에게 한○○ 씨라는 이름이 적힌 수첩과 가짜 돈 49만 원을 건넸다.

한○○ 씨는 해당 복지관 이용자의 실제 사례를 각색한 인물이라고 했다. 가족과 인연이 끊긴 노인이며, 2016년 기준 1인 수급비(생계비, 주거비, 기초연금 포함) 월 49만 원을 받고 있단다.

수첩에는 한○○ 씨의 생활과 지출목록이 간단하게 적힌 통장내역이 있다.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지출목록에 적힌대로 49 만 원을 쓰기 시작했다.

한○○ 씨는 누구일까?

한 기초생활수급자의 실제 주거공간을 담은 사진 앞에 놓인 바구니에 월세 30만 원과 수도·전기요금 등 주거관리비 5만 원을 넣었다.

식료품 사진 아래는 사실을 토대로 차린 밥상이 놓여있었다. 그 앞에 있는 종이상자에 식자재 구입비 8만 원을 넣었다. 그밖에 통신요금 2만5,000원과 의료비 3만5,000원을 내자 손안에 남은 가짜 돈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진행자는 한쪽 벽에 붙은 팻말을 가리켰다. 팻말에는 문화, 여가, 의료, 기타 다양한 목록과 금액이 적혀 있었다. 직원은 ‘만약 어르신이라면 어떤 것을 하고 싶느냐?’고 물었다.

한○○ 씨가 아닌 기자는 망설였다. 기자가 한○○ 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나이, 가족관계, 한 달에 49만 원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평소 기자가 좋아하는 영화 관람, 꼭 필요한 의료, 혹시 모를 잡화 구입 등을 골랐다. 가격은 10만 원을 넘었다.

진행자는 ‘이런 서비스를 복지관에서 제공하고 있으니 주변에 기초생활수급자인 분이 계시면 지역 복지관이 있다는 것을 알려달라’며 체험 소감을 적어줄 것을 부탁했다.

기자는 다시 망설였다. 정해진 목록에 따라 순식간에 49만 원이라는 돈이 사라진 것 외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기자는 재빨리 다른 사람이 적은 소감을 훑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각박한 세상 더불어 살아가요. 이웃과 정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 아직도 이렇게 어렵고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더 큰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초생활비 올려주세요.’

‘어르신 형편에 맞게 정부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에서 보조금 주는 것은 좋으나 겸손하게 사용하십시오.’

‘담배 못 피우네요.’

‘홀로 살게 될 때 문화생활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저 살기 위해 사는 것 같네요.’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더라도 당장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따로 쓸 돈을 벌기에는 몸이 너무 약해져있는 홀몸노인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생활비 여가비 너무 부족합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말이 안된다 지원이 더 필요합니다.’

‘너무 부족하여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하네요.’

훑은 소감을 참고(?)해 ‘가장 무난한’ 말을 적고 나가는 길에 진행자는 홍보책자 한 권을 가져가라고 했다. 홍보책자 안에는 복지관의 지원사업과 프로그램, 후원신청서가 들어있었다.

책자를 살펴보면 생신잔치, 야유회, 말벗, 가족나들이와 같은 정서지원서비스와 저소득가정 중 신체기능 약화로 가사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반찬·특식·계절과일·죽·김치 등 식생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돈이 없는 사람, 그래서 빈곤한 사람, 돈이든 반찬이든 무엇이든 받아야만 하는 사람, 한○○ 씨는 그렇게 표현되고 있었다.

공감, 사람과 사람사이 귀기울이기부터

또 다른 체험 역시 기자를 당황하게 했다.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기획전시실이 그랬다. 주최측에 따르면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체험해볼 수 있는 입체 전시다. 기획전시실에 들어서자 ‘상상 & 체험’이라는 안내문구처럼 청각장애, 노인, 난민, 쪽방 등을 체험해볼 수 있는 장치와 도구가 마련돼 있었다.

청각장애체험 공간에는 오래된 전화기와 배달음식점의 전화번호를 모아놓은 책자가 있었고, 벽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적혀있다.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앞에 놓인 전화기와 배달음식 메뉴판이 보이시죠?

지금 이 순간,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해주세요.

메뉴를 정했다면 전화기를 들어주세요.

이제, 원하는 배달음식을 시켜볼까요?”

다른 한쪽은 노인체험 공간으로 회색 누빔옷과 자주색 누빔옷이 놓여있었는데, 옷 안에 무엇을 넣었는지 꽤나 무거웠다.

“먼저, 성별에 맞는 의상을 입어 주세요.

이제 당신은 82세 노인이 되었습니다.

세월의 무게감, 삶의 무게가 느껴지시나요?

바닥에 놓인 짐을 들어 다른 위치로 옮겨 보세요.”

해당 체험을 하기에는 기자의 상상력은 부족했다. 앞서 체험에서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수화는 언어고, 기술이 발전해 영상통화가 되는 시대에 굳이 옛날 전화기를 갖다놓으면서까지 느끼게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누구나 늙고 아플 텐데 ‘무거운 옷’을 만들어 입히면서까지 느끼게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야인권교육센터 강희석 활동가는 특정 장애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상화하고 분리시키는 것을 자연스럽게 재미 위주로 하는 게 장애체험 프로그램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 활동가는 “사람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누고, 또 장애가 있다고 그 사람을 정해진 유형과 몇 가지로 나누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본래 취지는 어떻게 함께 살고 있는가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대를 쓰고 시각장애체험을 한다고 해서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함께 사는 것들을 경험하고 기억하기 보다는 이미 나와 사람사이에서 동떨어진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장애는 이런 것이다’와 같은 낙인, 피상적인 선입견만 강화하는 것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사는 데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우며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누가 더 부족해서 배제하거나, 누군가가 양보하면서 채워주는 게 아니라, 서로 없는 부분을 함께 채워나가자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어떤 문제를 공론화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국장은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살아온 긴 시간을 봐야 한다. 빈곤을 예로 들자면 한 사람이 빈곤하기까지의 과정이 있다. 그런데 이를 하루 또는 며칠만으로 알 수 있는가? 건강, 교육, 대인관계 등 삶을 둘러싼 여러 환경은 돈이 없는 것만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빈곤을 ‘돈이 없다’는 것만으로 정형화 하고 이를 체험하면 빈곤을 이해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자는 서울시청 광장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의 집’이라고 적힌 한 거주지 앞에 들렸다.

왠지 그곳에 살고 있는 어린이의 동의 없이 들어가기 무례하다는 생각에 바라보고만 있는 기자에게 한 직원이 다가왔다. 직원에게 ‘누구의 집이냐’고 묻자, ‘빈민가에 살고 있는 어린이의 집이다. 현장에 있는 물품을 주워오기도 하는 등 실제와 가깝게 꾸몄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이것을 통해 어떤 효과를 내고자 하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이런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라도 한 번 해주시라’고 말했다.

기자는 ‘더럽고 좁은 곳에서 사는 어린이’로 기억되지 않길, ‘선한 마음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길 바라며 행사장을 떠났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