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국회에서 사라진 ‘인권과 민주주의, 형제복지원 사건’
형제복지원 특별법 다시 발의… 진상규명과 인권구제 촉구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져 나왔을 때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이 진상조사를 했는데 당시 저는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으로 신민당 조사 작업에 참여한 바가 있습니다.

그때 그 진상보고서가 그 사건에 대해 유일하게 남아있는 진상 보고서인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진상규명을 철저하게 하지 못했어요. 그런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죠. 부끄럽기도 하고요.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과 피해 실태들이 낱낱이 파헤쳐 지고, 당시에 고통 받은 사람들 제대로 보상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특별법 발의에 참여했습니다.

국회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성의를 가지고 조속하게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국가가 해야 할 조치들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4.04.08. 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당시 문재인 의원의 발언-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준성 기자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준성 기자

민주화운동이 정점에 달한 1987년, 이 시기는 ‘부랑인’이라는 이름으로 513명이 불법감금, 강제노역, 폭력 등에 시달리며 사망(1975년~1986년 내부 자체기록 인원만)한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를 비롯한 형제복지원 박인근 전 원장 등은 단 한 마디의 사과나 반성도 없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법률안은 제19대 국회를 넘지 못하고 폐기됐고, 박인근 전 원장은 지난 2011년까지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지원재단의 이사를 역임했으며 지난해 사망했다.

이에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이하 대책위)은 지난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형제복지원 사건’ 토론회를 열었다.

대책위는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인권구제를 촉구했다.

“특별법 제정으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 회복해 달라”

▲ 2014년 4월 8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당시 문재인 의원.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 2014년 4월 8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당시 문재인 의원.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이번 토론회를 주관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지난해 7월 6일 ‘형제복지원 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법률안(이하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진 의원은 그동안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토론회 ▲출판 ▲연극 ▲농성 ▲삭발 ▲단식 등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싸웠지만, 박근혜 정부의 반대로 끝내 통과되지 못한 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진 의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아무리 힘없고 가난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해칠 수 없는 존엄을 가지고 있고, 국가는 이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 해결은 촛불의 힘으로 달라진 대한민국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5년 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에게 희망고문을 한 게 아닌가 죄송스럽지만, 이번에야말로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해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유족의 명예를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도 “형제복지원사건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 대표를 비롯한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는 다시는 누구도 국가폭력에 희생 당하면 안 된다는 호소.”라며 “30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덮어버리자는 사람도 있지만, 저와 정의당은 하루빨리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통과돼 피해생존자들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제19대 국회 때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침묵하던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도 이번에는 자리를 함께해 힘을 보탤 것을 약속했다.

인권위 이경숙 상임위원은 그동안 형제복지원 사건 해결에 게을리 한 것을 먼저 반성한다며 “5년 전부터 대책위와 국회에서 꾸준히 노력해주셔서 이번에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국회에 발의된 것으로 안다. 인권위도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통과돼 피해생존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 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국가의 협조·방조 뚜렷하게 ‘기록’, 책임과 배상 미룰 수 없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허상천 기자는 형제복지원이 대중에게 알려진 시점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와 동일한데,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에 대해서는 전국적인 관심과 취재가 이뤄졌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수백 명의 사상자와 피해자가 남은 이 사건이 이렇게 미결의 과제로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주윤정 박사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망각의 역사’라고 표현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열기 속에서 형제복지원의 문제 역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당시 동시다발적으로 독재의 폭력을 고발하는 사건들이 쏟아졌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형제복지원 사건의 의미를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는 시각은 다소 부족했다고 바라봤다.

주 박사는 “형제복지원 문제가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의 핵심 중 하나로 인식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곁가지적인 문제로 주변화 되는 측면이 있다. 명목상 폭력의 주체가 국가가 아닌 민간의 재단법인이었다는 점 또한 그 원인.”이라며 국가가 위임하고 방조한 폭력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그는 “1980년대 정당성 없는 정권이 정당성을 찾기 위해 장애인복지법을 제정하는가 하면, 남한과 북한의 대립 관계에서 ‘남한은 잘 살고 멋지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이른바 도시정화를 벌였다.”며 “특히 1981년 올림픽 유치 개최가 결정된 이후 부랑인 수용시설이 확대되며 이런 맥락 속에서 형제복지원의 대규모화가 이뤄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김일환 연구원은 형제복지원 연구팀(12명)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국가의 책임이 확실함을 규정지었다.

  ▲ 부산 형제복지원을 비롯하여 전국의 부랑인 수용시설 신축사업의 규모 일정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보고받고 이를 관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구걸행위자 보호 대책사업 추진상황보고  
▲ 부산 형제복지원을 비롯하여 전국의 부랑인 수용시설 신축사업의 규모 일정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보고받고 이를 관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구걸행위자 보호 대책사업 추진상황보고
  ▲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지원재단이 발행한 형제복지원 운영화보와 자료집. ⓒ박준성 기자  
▲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지원재단이 발행한 형제복지원 운영화보와 자료집. ⓒ박준성 기자

김 연구원은 “대책위를 비롯해 수집한 자료가 너무 방대해 발표하는 것은 1/10 정도밖에 되지 않음을 감안해 달라.”면서도 “국가기록문서가 자료의 2/3를 차지할 만큼 당시 보건사회부-부산광역시-형제복지원이 주고받은 문서들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국가기록문서는 △부산시의 1975년 부랑인 선도(수용보호) 위탁계약서 △부산시에 제출된 형제복지원 세입세출 예산서 △매일 부산시에 보고된 부랑인 수용일보 등이다.

김 연구원은 특히 1981년 10월 8일 정부로부터 내려온 ‘구걸행위 보호대책’ 관련 문서를 주목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해당 문서는 추진상황을 보고하는 것으로 ‘대통령각하 지시사항’, ‘실천계획’, ‘추진사항’이 기록돼 있다. 정부가 전국의 부랑인 단속과 수용시설의 확충, 민영화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관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한 예로, 정부는 주요재원 확보 미흡 건에 대해 ‘형제복지원을 모델로 삼아(수용인원의 인력지원을 받아 가급적 예산을 절감) 투자비 절감 방안을 강구’하게 하는 등 구체화 된 지시를 내렸다.

김 연구원은 “내용을 살펴보면 부랑인 시설 운영상 보완이 필요한 사항으로 ‘법령 미비’를 꼽았다. 이는 당시 정부 역시 내무부 훈령 등으로 부랑인 단속·수용 업무롤 시행하는 것이 충분한 법적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며 “이밖에도 형제복지원 자체 기록과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자료 등을 통해 경찰, 공무원 등 국가가 시민을 강제 수용하는 데 적극 협조했을 뿐 아니라 형제복지원의 야만적인 운영으로 인한 인권 침해를 방조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의 배상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부랑인은 우리의 공모·방관이 만들어낸 차별이다

▲ (왼쪽부터)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조영선 집행위원장,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주윤정 박사, 서울대 사회학과 형제복지원 연구팀 김일환 연구원,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 ⓒ박준성 기자
▲ (왼쪽부터)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조영선 집행위원장,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주윤정 박사, 서울대 사회학과 형제복지원 연구팀 김일환 연구원,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 ⓒ박준성 기자

자본주의 정신이 강조되면서 이른바 ‘도시정화’와 같은 부랑인에 대한 관리가 강화됐다. 그렇다면 부랑인이란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가.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난달 20일 개장한 ‘서울로 7017’의 이용 관리 조례 역시 내무부 훈령의 배제논리가 그대로 남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로 7017 이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제13조(행위의 제한)는 ‘흡연, 음주, 눕는 행위 등 통행에 방해가 되는 행위’, ‘심한 소음 또는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 ‘행상 또는 노점에 의한 상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는 “왜 눕는 행위만으로, 냄새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껌을 판다는 것만으로 배제 당해야 하는지 되물어야 한다. 형제복지원 문제는 부랑인이 아닌 시민들이 끌려갔기에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왜 지난 2012년까지 말하지 못하고 숨죽여 있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우리사회가 방치한 차별과 편견 문제와 떨어져 있지 않다.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피해자는 사라지고 나쁜 원장만 처벌받고 끝났기 때문에 우리사회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제논리는 공고해졌다.”고 강조했다.

주윤정 박사 역시 부랑이란 개념자체가 모호하고 문제 있는 개념이라고 정의하면서 “인권의 가장 기본은 신체의 자유이다. 하지만 ‘부랑=비정상’이라는 등식 속에서 한국사회에서는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존재했다.”고 비판했다.

명숙 상임활동가는 “부랑인이든 아니든, 어느 누구도 강제로 감금되고 폭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정 개인 처벌에서 끝나면, 이러한 불완전한 미봉책으로부터 싹튼 부정의가 사회를 더 병들고 썩게 한다.”며 “건강한 민주주의는 정치 제도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인권의 예외’를 만드는 데 공모하거나 방관하지는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대책위는 앞으로도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이향직(오른쪽) 씨가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에게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부를 전달하고 있다. ⓒ박준성 기자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이향직(오른쪽) 씨가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에게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부를 전달하고 있다. ⓒ박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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