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인권위 위상제고와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권고 받은 기관은 권고 수용률을 높일 것 ▲인권위 권고의 핵심 사항은 불수용하면서 부가적인 사항만을 수용하는 일부 수용은 사실상 권고 불수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런 무늬만 수용 행태 근절 ▲불수용의 사유를 미회신하거나 수용여부의 결론 자체를 회신하지 않는 행태 근절 ▲이행 계획을 미회신한 행태 근절 등을 지시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정례적으로 인권위의 특별 보고를 듣고, 인권위가 정부 부처 내 인권 상황을 종합 점검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인권위가 정부 각 부처 내 인권 침해의 파수꾼, 인권 옹호의 견인차 역할을 다해 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내‧외부 개혁을 통해 인권 보장 중심 기구로서의 역할을 공고히 할 예정이다.

하지만 다수의 시민단체들은 인권위의 위상을 강화하기 전에 인권위 자체 내부 개혁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권위의 신뢰가 무너진 만큼, 내부 개혁이 선행돼야 인권위 위상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은 28일 인권위 앞에서 ‘인권위 제자리 찾기를 위한 변화는 개혁에서 시작돼야!’란 표어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은 28일 인권위 앞에서 ‘인권위 제자리 찾기를 위한 변화는 개혁에서 시작돼야!’란 표어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인권운동사랑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33개 인권단체가 연대한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이하 인권위 공동행동)은 28일 인권위 앞에서 ‘인권위 제자리 찾기를 위한 변화는 개혁에서 시작돼야!’란 표어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권침해에 침묵했던 인권위, 과거 잘못 반성이 먼저

인권위 공동행동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 이후 인권위는 인권 침해 감시‧인권 보장을 위한 기구가 아닌, 국가기관이 저지르는 인권침해에 침묵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국가 옹호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진주의료원 폐원으로 인한 환자 사망,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 세월호 희생자들과 가족‧추모시민에 대한 감시와 처벌,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국가가 저지른 인권침해에 대해 인권위는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는 “국가가 국민에게 가한 인권침해에 대해 인권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뒤늦게 형식적인 결정만을 하며 국가의 편에서 구실 혹은 변명꺼리만 제공해줬다. 시민사회는 더 이상 인권위를 신뢰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가 지난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점거농성을 하다 사망한 고 우동민 씨의 이름을 국가인권위원회 현판 옆에 쓰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가 지난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점거농성을 하다 사망한 고 우동민 씨의 이름을 국가인권위원회 현판 옆에 쓰고 있다.

장애계도 고 우동민 씨 사망 사건을 이야기하며 과거 인권위가 저지른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반성 없이는 앞으로의 개혁‧위상 강화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우동민 씨는 지난 2010년 12월 당시 인권위 현병철 위원장의 퇴진과 장애인활동지원법의 제정 등을 요구하며 인권위 건물에서 농성하던 중 감기가 악화돼 급성 폐렴으로 번져 이듬해 1월 2일 사망했다.

장애계는 고 우동민 씨의 사망에 대해 인권위의 사과와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끝내 사과를 받지 못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현병철 위원장 이후 이성호 위원장이 임명됐을 때 장애계 단체를 방문했다. 그는 우동민 씨 사망에 대한 사과 대신 유감을 표명했다. 사과와 유감은 다른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인권위가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 하려면 과거 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했다.

인권위 위상 강화를 위해 개혁돼야 할 6가지 과제

인권위는 그동안 국가가 가해자가 된 인권침해, 인권위 스스로 행한 인권 침해 등에 침묵하면서 원래 목적인 인권 침해 감시를 통한 인권 보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이 인권위의 위상강화를 발표한 만큼, 앞으로 인권위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에 인권위 공동행동은 인권위 주요 개혁 과제로 ▲과거 인권침해에 대한 사과와 재방방지책 마련 ▲독립성 강화와 인권위원 후보추천위워회 구성 ▲인권위 관료화 극복과 외부인사 사무총장 임명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시민사회와의 실질적 교류와 인권현안 개입력 확대 ▲인권위 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내세웠다.

특히 이들은 인권위가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부족함을 지적했다.

▲ 인권운동사랑망 명숙 상임활동가.
▲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

인권위법 19조는 인권위와 인권단체의 협력을 주요 업무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당시 현병철 위원장 시절부터 매년 연초 인권위 사업계획 수립시 시민사회의 의견을 청취하는 업무계획 간담회가 열리지 않았다. 특히 지난 2010년 시민사회 출신의 인권위원, 전문위원, 자문위원이 대부분 사퇴하면서 시민단체화의 소통은 사실상 단절됐다.

명숙 상임활동가는 “시민사회와 소통을 통해 인권현악과 인권의제를 발굴하는 것은 인권위의 숙명.”이라며 “그러나 보수정권 9년 동안 인권단체와의 소통은 사실상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시민사회와 인권위의 가교역할을 하고, 시민사회 감수성으로 인권위원과 직원들이 관료화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줄곧 인권위 내 외부인사 인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번번히 인권위는 내부출신으로 인권위를 꾸렸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에 인권위 공동행동은 최근 안석모 사무총장이 사퇴함에 따라 외부인사가 새롭게 사무총장직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위의 불투명한 운영도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인권위 공동행동에 따르면, 인권위법상 모든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지만, 현병철 전 위원장 시기 동안 비공개 회의가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정보공개로 얻은 회의록이나 국정감사기간에 국회에 제출하는 회의록에도 인권위원 이름이 가려져 있어, 어떤 인권위원이 어떤 근거로 인권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는지 알 수 없다.

이에 인권위 공동행동은 인권위의 불투명함은 인권위에 대하나 시민사회의 통제를 불가능하게 하고, 인권위원의 무책임함을 부추기는 처사라며, 비공개회의 축소와 회의록공개, 인권위원 실명처리를 정책 과제로 제안했다.

한편 인권위 공동행동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인권위 개혁 촉구‧개혁과제를 담은 문서를 인권위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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